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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상한 심령을 드리는 예배(4/19)

지난 번 목회자 컨퍼런스 때, 일본에서 주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20년 전에 일본에 건너가셔서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지금은 교회가 300명이 넘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그 정도면 큰 교회라고 할 수 없겠지만, 일본에서 그 교회는 그 목사님이 속한 교단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고 일본 전체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큰 교회라고 합니다.

교제 중에 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국교회를 배우기 위해 일본 교인들을 데리고 자주 한국 교회를 방문하곤 했는데, 한번은 어떤 교인이 이렇게 묻더랍니다. 왜 한국에는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들이 저렇게 많고, 그리스도인들이 저렇게 많은데, 왜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목사님이 순간 좀 당황하셔서 멈칫거렸는데, 그 교인이 말하기를 "한국교회의 예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상한 심령"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이 그 교인에게 옳은 대답이라고 나지막하게 대답하셨는데, 기분이 몹시 씁쓸해지더랍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의 화려한 예배당과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가 그렇게 큰 의미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더랍니다.

저도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상한심령을 드리는 예배야말로 예배의 기본 중에 기본인데, 그 기본을 저부터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한 심령을 드리지 않기 때문에 용서 받는 감격이 없고, 상한 심령을 드리지 않기 때문에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지 않으니, 그 설교를 나름대로 판단만 할 뿐, 그 말씀이 아무런 느낌도 없고,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배는 많이 드리지만 삶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상한 심령을 드리지 않는 형식적인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상한심령을 드리는 예배, 그래서 예배가 예배다워져서 삶이 변하고, 가정이 회복되고, 부부관계에 행복이 있는 예배, 기쁨이 회복되고, 영원한 소망이 회복되는 그런 예배가 우리교회에서도 드려지기를 꿈꿉니다.

목양실에서 허 목사

해외한인장로회 뉴욕한인연합교회 United Korean Church of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