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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형제의 눈에 티가 보일때

일전에 멕시코 캔쿤에서 열린 교단 총회에서 몇 년 만에 선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몸이 아주 비대해져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나이 50이 넘었으면, 몸 관리 좀 잘하시지, 저게 뭐람! 저런 몸으로 어떻게 목회를 하시나... 배둘레햄에 사는 배내민 지파 사람 배들어라더니, 저 선배가 딱 그 사람이네' 라고 상대를 흉봤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함께 찍고 나서 찍은 사진을 보는데 너무나도 민망하고 당황스럽게도 그 목사님보다 제가 더 뚱뚱한 겁니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정말 이렇게 뚱뚱한가? 이 전화기는 특정한 사람을 더 뚱뚱하게 찍는 특별한 기능이 있나!' 아무리 봐도 그 전화기는 그런 고급 기능이 있는 특별한 전화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 싫지만, 제가 그 선배보다 더 뚱뚱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본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느껴보았습니다.         

'티'와 '들보'의 차이는 '이쑤시게'와 '전봇대'의 차이보다도 더 큰데,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제 눈에 있는 거대한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있는 그 작은 티를 보며 흥분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참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진리의 척도라고 거들먹거리지만, 실제로는 제 눈에 들보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상대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과 단점을 지적하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확인도 하지 않은 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자기 나름대로 단정하고 지적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마치 자신은 그런 허물이나 단점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상대의 눈에 티가 보일 때, 그래서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자동으로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려 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티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쏙들어갈 겁니다. 아주 가끔씩이라도 형제의 눈에 티가 보일 때, 늘 내 눈의 들보가 생각났으면 참 좋겠습니다!!

목양실에서 허목사

해외한인장로회 뉴욕한인연합교회 United Korean Church of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