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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12/11)

“국회의원 품위 지켜!!”한국에서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탄핵에 반대하는 의원 명단을 SNS에 올리겠다는 한 야당 의원에게 반발하며 여당의원이 한 말입니다. 그 말이 요 며칠 제 머리 속을 맴돕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품위 같은 것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고 국회의원의 품위라는 말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격지심 때문이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품격이라는 말도 굉장히 낯설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신칭의’즉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 교리는 타 종교와 구분 짓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입니다. 교리를 믿음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때, 이 교리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신칭의’는 정말 믿기만 하면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 구원을 보증한다는 교리일까? 일찍이 나치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독일의 본훼퍼 목사는 당시 히틀러 정권에 침묵하고 동조했던 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은혜’라며 평가 절하했습니다. 본훼퍼의 눈에 비친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가짜였던 겁니다.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주장은 초대 교회 당시 이미 구원 얻었기 때문에 율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소위 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과 흡사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가 아니고, 반드시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겁니다. 국회의원의 품위라는 말처럼 오늘날 기독교인의 품위라는 말이 참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이신칭의라는 교리를 자신의 허물을 정당화 하는 궁색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이신칭의’라는 교리는 말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존재 자체로 설명이 되고, 그리스도인의 품격이라는 말이 참 익숙했던 때가 무척 그립습니다. 그런 때가 다시 재현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목양실에서 허 목사

해외한인장로회 뉴욕한인연합교회 United Korean Church of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