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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애통의 복이 그리워질때 04.02.2017

요즘은 삼일 기도회를 통해 마태복음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나눈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의 두 번째 말씀,

애통하는 자였습니다. 많이 익숙한 말씀이었지만, 사순절

기간이어서 그런지 예배 후에도 애통이라는 말의 의미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애통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죄로 인해 탄식하시는 성령에 공감하여 성령과 함께 우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통은 외롭거나 서러워서 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슬픔’입니다. 주님은 애통하는 사람만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주님의 ‘위로’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작은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그런 얄팍한 속임수가 드러나면 말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어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개인의 관계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런 모습이 많이 익숙한 시대이기에 애통할 정도로 성령의 탄식을

감지하고, 공감하며 애통할 정도로 영적인 민감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더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분을 내기에 앞서 먼저 자기를 죄를

아파하는 사람이야 말로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미국에 오자마자 출석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일이었는데, 한 자매가 은혜 받았다며 하루 종일 교회에서 울고

다녔습니다. 그 자매는 사람들과 말을 하면서도 울고,

인사하면서도 울고, 밥을 먹으면서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슬퍼서 우는 어두운 얼굴과는 전혀 다르게 밝게

빛났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죄로 인해 느끼는 슬픔과 동시에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 같은 기쁨, 서로 다른 감정이

그 자매의 얼굴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우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성령의 탄식에 공감하면서 ‘애통’했던 경험이 제게도

분명히 있었는데, 그 때가 언제인지 참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

사순절 기간이 다 가기 전에 성령과 함께 ‘애통’해하며 주님의

위로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양실에서 허목사

해외한인장로회 뉴욕한인연합교회 United Korean Church of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