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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기록한 자기 의 02.25.2018

주중에 누가복음을 읽고 탕자의 비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또 다른 탕자, 큰 아들에 대한 생각이 한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도 탕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탕자는 오로지 자기 동생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생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아버지께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누가 봐도 탕자입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큰 아들의 탕자 됨이 보입니다. 큰 아들이 자신은 절대로 탕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근거는 자기 의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께 할 도리는 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신 보다 오히려 가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작은 아들을 더 두둔하고 챙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당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없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도대체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동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마땅히 동생보다는 자신을 더 대우해야 하고, 거지가 된 동생은 절대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큰 아들의 생각입니다. 그런 큰 아들의 생각이 부당한 것은 아닙니다. 합당하고 공의롭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어떤 아버지도 제 자식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공의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으로 나가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의(義)입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나 본적이 없기 때문에 구원 받을 만하다는 생각, 자신은 선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낫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왜소하게 합니다. 정말 교회에 한 번도 떠나지 않은 것, 상대적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한 것, 그런 것이 순수한 은혜에 대한 반응이었을까?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선을 가장한 이기심의 발로는 전혀 없었던 것일까? 큰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 늘 아버지 곁을 지켰다면, 동생이 돌아왔을 때, 그도 아버지의 기쁨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목양실에서 허목사

해외한인장로회 뉴욕한인연합교회 United Korean Church of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