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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 로마서 12:1-2

[목양에세이] 선조의 열등감(11/1)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선조와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선조는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아들 덕흥군의
셋째아들로 명종에 이어 보위에 오릅니다. 선조는 조선조 최초의 방계출신의
왕인 셈입니다. 그런 열등감 때문인지, 선조는 주변 사람들을 신뢰하기 보다는
의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조는 정여립 모반 사건 때 송강 정철을 앞세워
무려 1,000여명의 학자와 사람들을 죽입니다. 이 기축사화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는 조선조 4대사회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의 수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이러한 선조의 의심은 임진왜란 당시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의 신망이 높았던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죽이고, 홍의 장군 곽재우의 목숨도 노립니다. 이런 이유로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활동이 눈에 띄게 감소하여 전쟁의 양상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선조의 의심은 계속 이어져 임진왜란 무패의 영웅 이순신을 노립니다. 이간 계를
쓰는 일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내린 선조의 무모한 출정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조는 이순신을 항명죄 다스렸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하여 모진 고문을 가합니다. 그 사이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된 원균이 칠천량 해전을 지휘하는데 이 전투에서 조선수군은 그야말로
궤멸되고 원균도 전사합니다.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어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선조는 여전히 이순신의 공을 폄하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는 중에 임진왜란의 주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전쟁이
끝나고, 퇴각하는 일본군과 맞서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이순신은 장렬히
전사합니다.

역사가 맡긴 소임에 끝까지 충실했던 이순신을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하는 이는
많지만, 방계 출신의 왕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란극복보다는 타인을
의심하고 무고한 생명을 해했던 선조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리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선조가 열등감에서 자유로웠다면, 분명히 그는 훨씬 더 나은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고, 임진왜란 때 그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안타깝습니다.

목양실에서 허 목사

-- 작성자: www.ukcny.org , 날짜: 10/31/2015 10:41:00 오전 , 이 글의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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